Octo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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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9 2019-10-15T06:14:23+02:00

자녀들에게 이야기했는가?

우리 막내 아들이 워싱턴 DC 성경 박물관의 성경 마을에서 캐릭터 가이드와 대화하는 모습

올 여름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편이 취소되어 우리는 워싱턴 DC에서 이틀간 머물러야 했다. 이 안 좋은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우리는 성경 박물관을 찾았다. 미국의 수도에 바로 얼마 전에 개관한 이곳은 가히 장엄한 곳이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 성경에 걸맞는 기념비라고 할 수 있다. 멋진 7층 건물에는 한층 전체가 성경의 이야기들이 살아나도록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걸어다니며 성경 시대의 인물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마을까지도 있었다.

타낰흐 (구약)에 할애된 섹션에는 다감각적 프레젠테이션으로 시간표를 따라 눈부시게 멋진 성경 시청각 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야기와 광야의 여정을 지나가다 보니, 마침내 약속의 땅에 도착할 때의 감정은 순전히 짜릿할 정도였다. 코너를 돌기 전 우리는 바위 기둥 옆에 섰는데, 그 벽에는 여호수아 4장의 말씀이 풀어져 있었다.

“다가올 날들에 네 자녀들이 아비에게 ‘이 돌들은 무슨 의미인가요?’라고 묻거든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이 이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넜다.’”

코너를 돌고나서 벽에 적힌 다음 구절을 보니 흥분감은 잦아들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삿 2:10)

나는 딸에게 물어보았다. “마지막 구절과 이 구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딸은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아! 자녀들에게 말을 안 한 거에요!” 아이의 대답이었다.

코비와 샤니, 그리고 다섯 자녀 (일리트, 라하브, 네바에, 셀라, 네셰르)가 함께 여행하며 사역하는 모습 (Photo courtesy of Diante do Trono)

가족의 속도로 움직이기

20년 전 지난 달, 코비와 나는 서약을 했다. 첫 아이를 낳기까지는 6년이 걸렸고, 둘째를 낳기까지는 또 2년이 걸렸다. 우리는 여행하며 사역하는 데에 익숙했고, 텔아비브 공동체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어린 두 아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함께 데리고 다니거나, 베이비시터를 불렀다. 셋째 아이가 태어나니까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걸 느꼈다. 넷째가 태어나고는 모든 걸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넷은 손에 가득 차고도 남을 정도였지만, 아들 하나에 딸 셋이라 아들이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나를 더 낳기 위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또 한번의 임신 기간을 보낼 생각에 갈등이 됐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다가 당시 열 살이던 첫째 딸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가족에 뭔가 빠진 것 같아.”

그 발언은 나에게 확증이 됐다. 정말로 우리는 다섯째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 (실제로 아들이 태어났다!)이었는데, 그때 난 가족에 대한 무언가를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이 몇 명이어야 하는지를 계획하셨던 것 같았다. 야곱에겐 13, 이삭에겐 2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족마다 다 다르다. 우리의 여정에 있어, 퍼거슨 팀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다섯 명의 새로운 선수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미 풀타임으로 사역하던 우리는 우리가 알던 성공적인 사역과 사업의 가정들을 바라보았는데, 가족이라는 것은 부모의 삶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가 자녀들을 깊이 사랑하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었지만, 부모들에겐 기저에 깔린 죄책감이 있어 보였다. 자녀들에게 너무 초점을 맞추면 왜인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태만하게 된다는 느낌이었다. 뭔가가 잘못돼 보였다. 사람이 온 민족을 구하는 데에 도움을 줄 지언정 자신의 가정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왜인지 우리 사회는 이렇게 세워져왔다.

이것을 소화하는 과정은 가구 하나를 다 조립하고서 보니 얼마나 많은 나사가 많이 남았는지 깨닫는 것과 같았다. 다 맞게 조립한 것 같은데 어느 시점에 디자인대로 조립을 안 해서 뭔가가 떨어져 나오는 것 같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벌하라고 주신 적이 없다. 자녀는 항상 축복이자 주님의 길을 따른 데에 대한 상급으로 나타난다. 그 사람의 이야기가 이후에도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약속이다. 한 사람의 사업이나 사역이 하나님의 계획에 속해있다면, 자녀가 그 진로에 방해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내 아들이 없인 안 된다

몇 년 전, 미국 전역의 뉴스 매체들이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다. 프로 야구 선수인 애덤 라로쉬가 10대의 아들을 데려와 매일 연습하게 했던 것이다. 애덤은 아들의 학교와도 합의를 봤고, 경기 때문에 이동을 할 때면 팀원들 모두가 아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젠가 팀 대표가 그런 합의를 탐탁잖게 여겨 원칙을 어기기로 했다. “우리 모두는 그 아이가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단지 매일 이러면 안 된다는 것 뿐이죠. 그게 답니다. 얘기해 보세요. 미국에서 직장에 매일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팀 대표가 문자를 했다. 애덤은 자신의 우선순위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고 연봉 1,300만 달러짜리 직업을 버렸다.

드레이크 라로쉬, 가운데: 1루수 애덤 라로쉬의 아들이 봄 야구 연습 기간 중에 함께 뛰는 모습.  그는 화이트삭스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수년간 팀 연습에 참여해 왔다.  (AP Photo/David J. Phillip)

번아웃 되었다는 이유로, 혹은 애덤의 경우 자신을 번아웃 되게 만들 생활을 거부하면서 고액 연봉의 직장 혹은 유망한 사역 자리를 버리는 사람들은 왜 있는 걸까? 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사랑하는 가정 가운데서 성장하여 또 자신만의 가정을 꾸려갈 필요)를 사회에서 무시하는 한, 성공한 사람들은 점점 공허해질 뿐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또한 우리는 옳은 습관, 옳은 식생활 등 개인적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너무나 많은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매순간 인생 가운데 전진하기 위해 스스로를 짜낸다.

가정은 시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디즈니랜드에 가기로 한 날 아침에 혹은 직장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는 전날 밤에 아이가 아픈 경우다. 아이를 양육하는 일의 혼돈스러움은 가장 스스로 질서 있게 살아가는 사람도 무릎을 꿇게 만든다. 내가 추측건대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그러시는 것 같다. (아프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슈아께서 말씀하시는데 방해한 아이들을 쫓아냈다가 아이들을 방해했다고 예슈아께 꾸중을 들었으니 말이다. 혼돈스러운 상황은 우리를 어지럽게 하지만 주님은 방해받지 않으신다. 안식일과 같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는 우리의 야망에 브레이크를 걸고 인간애에 뿌리를 내릴 수 밖에 없게, 그리고 하나님께 의지하게 해준다.

우리 아들 셀라가 당시 5세로서 브라질의 컨퍼런스에서 말씀을 나누는 모습

가능하다

몇 년 전 우리는 온 가족이 브라질을 찾았다. 온갖 잘 알려진 사역체 리더 및 예배 인도자들과 함께 컨퍼런스에서 말씀을 전했다. 한 곡을 부르고 우리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한 뒤, 아이들을 소개하고 5살짜리 아이까지 한 마디를 하도록 했다. 아이가 무대에서 나눈 사랑스러운 2분은 일주일 내에 유튜브에서 조회수 10만을 달성했다.

컨퍼런스 다음 날, 나는 무대 뒤 초록색 방에 앉아 있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포르투갈어로 열심히 이야기해왔다. 그들은 화가난 듯 보여서 친구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저 사람들 나한테 화났어?” 친구는 낄낄거리며 설명했다. “네가 어떻게 이 모든 걸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거야. 노래하고, 말씀 전하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역하고, 동시에 다섯 아이를 키운다는 것 말이야. 여기 사람들은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많이 낳는 건 두려워 해. 사역할 시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나는 대답했다. “다섯 아이가 있어도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만큼을 할 수 있다고 전해줘. 그저 처음에 조금 더 천천히 하면 되는 거지.”

누구도 모든 사람의 상황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가정마다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증명된 성경적 원리와 유대 전통을 적용하여 우리의 생활 가운데 대입했으며, 그게 잘 작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너무나 잘 돼서 우리는 가족들을 주님의 도로 훈련하고자 실질적 아이디어들을 원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가족 제자훈련 매뉴얼/컬러링 북 <컬러 미 패밀리>도 출간했다.

짧게 보면 가족을 우선으로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명 혹은 자신들의 상사의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을 희생하려는 사람들의 “성공”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가족이 따라갈 수 있는 속도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 더 보람될 것이다.

보는대로 하는 원숭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보는 바가 되고자 한다. 어린 자녀들이 부모와 같이 “커지고자” 하는 이유가 그것이고, 착한 아이들이 나쁜 친구와 어울리면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도 그렇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수가 될 꿈을 노래하지 못한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끝없이 많은 노래 경연대회, 쇼, 영화들의 클라이막스에서 젊은이가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에서 <곤도 마리에>와 <미니멀리스트> 같이 정리하여 말쑥한 삶을 즐기는 것을 보여주는 쇼가 방송되자마자 사람들이 정돈된 옷장의 비포와 애프터를 자랑스럽게 게시하기 시작했을 때 드러났다. 나는 농업의 위기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농부들의 평균 연령이 60세 이상이고 젊은이들은 그 뒤를 잇기 위해 줄을 서지 않고 있는데, 농장의 독특한 삶과 그것을 둘러싼 탄탄한 공동체에 대한 쇼를 만드는 것이다.

1950~1960년대에 방송된 인기 드라마 <비버는 해결사>는 완벽하다기 보다는 이상적인 일상 생활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걸로 안 된다. 아이들이 순진한 나쁜 짓을 하고 또 부모에게 교정 받고, 인생을 안전하게 탐구하는 법에 대해 배우는 <비버는 해결사>의 시대는 갔다.

이것은 고의적이다.

이 시대에 전통적이고 따뜻한 가정의 모습을 담은 영화는 드물다. 반대로 영화들은 한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강요하는” 인생을 거부하고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거의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들은 흔히 똑똑하고 능력 있게 (지치긴 했지만) 그려지고, 아버지들은 허풍떠는 바보 혹은 최소한 약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구조를 새로 태어난 각 세대가 하나님의 방식과 지식 가운데 발전해나갈 수 있는 피난처로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지식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길 원하는 자들에게 너무나 분명한 표적이다. 그리고 정치와 연예 사업 같은 권력의 자리에 있는 영향력 행사자들(인플루언서)이 바로 그 목표를 이루고자 얼마나 갈망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도덕적 무법 상태 혹은 자유(그들이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듯)가 대중 문화에서 얼마나 각광 받는지, 특히 가정의 안녕을 얼마나 표적으로 삼고 있는지를 보면 흥미롭다. 아무도 도적질이나 살인이 괜찮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젠다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지식을 전수하라는 인간의 부르심의 뿌리에 일부러 도끼를 대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오랜 예는 평생의 헌신을 먼저 하지 않은 커플이 함께 사는 것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캐주얼 섹스의 경박함에는 질병과 실연이라는 그 자체의 문제적 결과가 뒤따르지만, 이러한 행위의 최대 피해자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음을 알고 자라게 될 수백 만의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발상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아니 하늘에 있는 자가 우리 엄마가 자기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떠난 아빠 같은 존재라는 거야? 어떻게 그런 자가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서 왔으며,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는 거지?”

오늘날 어린이 방송들은 아이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족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꿈 (많은 경우 음악과 관련)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를 고집하고 있다.  (Shutterstock.com)

중요한 우리의 이야기

내가 당신에게 목걸이를 주며 오는 길에 가게에서 사왔다고 하면, 고맙다면서 걸어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내가 목걸이를 주면서 유대인인 우리 할머니가 12번째 생일 때 받으셨던 건데 그 다음 날 마을이 공격 당해서 도망쳐야 했다는 상세한 이야기를 해주면 어떻겠는가? 그리고 나서 할머니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영국령 팔레스타인에 왔다가 영국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하고, 미국에서 망명을 신청하게 됐다면 말이다. 할머니는 결혼해서 7 자녀를 낳았고, 그 중 하나가 우리 아빠였고 아빠는 그 목걸이를 내게 전해주셨다. 할머니는 그 참혹한 경험들 내내 목걸이와 함께 하셨던 것이다. 이제 내가 그 목걸이를 당신에게 준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당신이 그 목걸이를 다르게 쳐다보고 취급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목걸이가 지금까지 겪어오고 살아남은 모든 역사를 생각하며 경외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한 경외감을 우리는 아이들의 탄생을 이야기하며 주입시켜줘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후에 변하게 될 모습이 수 세대 동안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는 것을.

목걸이 부분만 제외하면 이것이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나를 데려다 놓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겪은 일들을 들으면서 나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에 재를 뿌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진다.

유대 민족의 계보에 속해있다는 것에 있어 가장 멋진 (그리고 약간 부끄러운) 점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얼마나 많이 기록되어 있는가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의 잘못된 행동을 조금씩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들도 결국 인간들의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게 내 존재의 일부이며, 조상들이 불완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것이다. 우리는 긴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의 출신을 알 때 우리에겐 목적이 생긴다. 조상들의 여정에 대해 아는 사람들 역시 모두 그럴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이전 세대의 가족들이 자신을 여기에 이르도록 해주기 위해 겪은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살아간다면 어떨까? 이 이야기는 혈육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녀가 한 가정에 태어날 때, 그 가족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것이 된다. 우리가 일으키고 있는 세대가 과거를 이해하고 그 긴 이야기 가운데 미래적 의의를 꿈꾸도록 키울 수 있다면, 갑자기 청바지나 아이폰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향후 100년간 중요할 일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 지금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묻고 싶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이야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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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가 오실 때까지하나님의 말씀의 성쇠3부

윌리엄 홀먼 헌트 작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처음 강제로 끌려간 것은 주전 597년이었다. 이때 유다 왕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이스라엘에 남겨진 것이라곤 예레미야의 소망에 대한 예언 뿐이었는데, 70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유수에서 풀어주시고 다시 고토로 데려오신다는 내용이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렘 29:10)

그리고 약 68년쯤 흘렀을 때,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동하게 하셔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고토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라는 칙령을 발표하게 하셨다.

불과 43,000명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대 민족의 영적 리더인 레위 지파가 분열됐다. 많은 유대인들이 동화되고 결혼을 통해 섞였다. 이들은 히브리어 대신 바벨론의 언어 아람어를 썼다. 그리고 사업과 정부 영역 모두에서 잘 해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장기 정착하여 집을 짓고 바벨론을 축복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분명 디아스포라에서의 생활은 황량한 유대보다 나았다. 바사가 다스렸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들은 제국 전체에 흩어져 있는 유대 민족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들에게는, 강한 영적 리더십의 부재, 가난, 음식 부족, 끝없는 원수들로 인해 어떠한 실질적 경제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사 성전 재건을 독려하게 하셨다. 그래도 완공까지는 20년 이상 더 걸릴 것이었다.

에스라가 말씀을 가르치며 음악인들은 찬양을 드리고, 일꾼들은 성전을 짓는 모습. (Ultimate Bible Picture Collection)

서기관 에스라

그러나 돌아와 어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장기적인 영적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에스라였다. 그는 약 80년 후에 도착했다. 주전 458년에 그는 추가로 1,800명의 제사장, 레위인, 음악인과 그들의 가족들을 데려왔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70년의 약속을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와 문제와 장해 없이 순적하게 지낼 것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이 귀환자들은 특별히 헌신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이교도들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거의 몰랐다는 게 확실하다. 앞서 공동체의 영적 필요를 돕기 위해 먼저 이주해 온 몇몇 레위인들은 사역을 내려놓고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어두운 시골 사람들에게 다시 전해주기 위해 상황을 뒤집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 7:6, 10

이사야서의 사해 사본

경건한 정치 지도자의 필요

혼란과 빈곤, 불확실성 가운데, 에스라는 홀로 백성들을 참된 회개로 이끌 수 없었다. 유대 민족이 경건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선 두 가지 필수 조건이 필요함은 확실했다. 선한 민간 정부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

하늘에서 그런 사람은 보내주셨다. 느헤미야가 (무급) 통치자가 되어 이 땅에 도착하고 백성들을 정돈한 뒤, 백성들은 끊이지 않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 주변에 벽을 세웠다. 이스라엘에 느헤미야의 통치와 에스라의 가르침, 레위인들(여성 싱어들 포함)의 예배가 합쳐졌을 때 부흥이 터졌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느 8:18)

하지만 느헤미야 통치자가 왕의 요청으로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야 했을 때, 그가 이스라엘에 돌아와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옛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있는 모습 뿐이었다. 잡혼,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내지 않음, 그리고 안식일을 부정하게 만듦. 느헤미야는 다시 한번 백성들을 조직하고 두 개의 대규모 예배 합창단을 지정하고, 다시 에스라를 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에스라는 향후 유대인 수 세대에 걸쳐 (오늘날까지도) 성경 읽는 방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예언적 말씀은 4세기 동안 잠잠했다. 레위인들은 사그라져갔고, 여러 영적 리더들이 일어나 자신의 깨달음에 따라 유대 종교를 재구성하려 했다. 그들은 토라를 결정했고 선지자들에겐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설명과 적용이 필요했다.

헬라의 통치

알렉산더 대왕의 흉상

그리고서 주전 323년에 유대 민족을 향한 전적 변화가 일어났다. 알렉산더 대왕이 지구의 상당한 부분을 정복하고 난 뒤 죽었다. 알렉산더의 두 장군이 서로 간에 정복된 영토들을 나눴다.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은 남쪽의 이집트를 취했다. 셀레우쿠스 장군은 스스로 북쪽 시리아의 주인이 됐다. 이스라엘은 둘 사이에 있었다. 이는 2세기 반 동안 이스라엘 영토에서 이어진 끔찍한 전쟁의 서막이었다. 이 두 왕조 간의 잔혹 행위에는 가족들의 멸절, 음모, 독살, 살인, 저격,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의 학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유대 땅에서 정복과 재정복이 계속 이어졌다.

헬라어로 성경을 번역한 유대인 랍비

때로 단기간의 평화가 있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이집트로 끌고가 노예 삼았다.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그들을 풀어주었다. 대규모의 유대인들이 이집트 여러 지역에 정착했다. 특히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가 대표적이었다. 유대인들의 어린 세대는 곧 헬라어를 쓰게 되어,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잃어버렸다.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70인의 랍비들은 히브리 성경 원문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번역은 셉투아진트 즉 70인역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들은 토라로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히브리 성경 나머지까지 헬라어로 번역했다.

유대 민족은 주후 70년에 성전이 무너질 때까지 이 번역을 썼다. 신약 또한 헬라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많은 저자들이 70인역에서 구약을 인용했다.

하지만 이방인 가운데 기독교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70인역은 “기독교의 책”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고 유대 지도자들은 히브리 본문만을 보는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유대인들의 헬라화

한편 전쟁하던 프톨레마이오스와 셀레우쿠스 왕조가 한 지역에서 연합되었다. 권력에 날뛰어 정복하러 다니던 이 장군들과 그들의 자손은 자신들이 다스리는 모든 인종과 민족들 가운데 헬라 문화를 강요하기로 작정을 했다. 물론 여기엔 그들의 신들도 포함됐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을 포함한 많은 유대인 귀족 엘리트주의자들은 헬라의 세련되고 멋진 생활 방식에 대해 수용적이었다. 반면 일반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고수하고 싶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돼지 피로 더럽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주화 이미지.

그러나 셀레우쿠스 통치자 중 한 명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유대 민족 모두로부터 유대교의 모든 표징을 박멸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는 유대 성전을 주피테르의 신전으로 바꿨다. 제단에 주피테르의 신상을 두었다. 이교 제사가 드려졌고 제단 위엔 돼지의 피가 부어졌고 그 물이 성전 전체에 뿌려졌다. 그는 또한 안식일과 절기들을 불법이라고 선포했다. 토라 두루마리는 조각조각 찢겨 태워졌다. 할례를 받은 아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학살되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안티오쿠스는 수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자유화된 유대인들은 굴복했다. 순교를 하기엔 너무나 세속적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반 사람들은 수동적 저항으로 체념했다. 그들은 (다니엘서를 통해) 세상의 끝이 임박했다고 가정했고, 메시아가 나타나서 그의 왕국을 세울 때까지 견뎌야 할 뿐이었다.

늙은 제사장과 다섯 아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제사장의 아들인 유다 마카비에게서 도움이 임했다. 그는 적극적 저항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와 세 형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믿을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쳤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전사들에게 성공을 주셨고, 3년 후 그들은 성전을 재봉헌했다. 하시딤이라고 불린, 경건한 일반인들 일부는 유다의 군대에 가담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시작이었는데, 그들의 개념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강하게 헌신된 사람들이었다.

마카비 형제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시몬이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는 부상하는 로마 제국의 지지를 업고 7년간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렸다. 잠깐이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의 믿음의 율법을 실행할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시몬이 주전 141년에 로마 덕에 “영원한 왕자, 사령관, 대제사장”이라는 복합 칭호를 얻었을 때, 하시딤은 제사장이 왕이 될 수는 없다며 그에게 반발했다. 두 칭호는 오로지 유다 지파에서 오실 메시아에게만 주어질 것이었다.

곧 일들은 남부로 진행되었다. 시몬과 그의 아내, 가족들은 여리고의 통치자였던, 야망찬 시몬의 사위에게 살해되었다. 살아남은 시몬의 아들 요하난 히르카누스 (주전 135~104년)는 헬라적 생활방식에 완전히 젖어있었다. 그 역시 대제사장과 유대 국가의 우두머리로서 스스로를 지명했다.

그 때로부터 제사장 제도는 완전히 부패했다. 대제사장들은 돈으로 직책을 사게 되었다.

얀 반 야겐 작 대제사장

참된 예배의 붕괴

예슈아의 탄생까지 이후 수백년 간, 성지를 두고 두 헬라 왕조 간의 전쟁과 대학살, 계략, 기만은 이어졌고 결국 신흥 로마 제국에 의해 패배당했다. 사람들은 진정 목자 잃은 양 신세였다.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귀족적이고 부유한 자유주의 유대인들은 최신 외국 정복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교활한 권모술수를 발휘했다. 제사장직의 통치자들은 사두개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은 천국이나 지옥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 이들은 융통성 없는 준수를 고집하며, 의무적 토라 계명들을 수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이들은 타락했고 세상적이었으며, 오로지 한 가지 권력만을 마음에 두었다.

바리새인들이라고 그보다 나을 게 거의 없었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전하는 경건한 선지자가 더 없는 가운데, 바리새인들의 종교가 만든 신앙은 수많은 외부적 계명과 전통으로 진화했으며, 그중 다수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들은 예레미야가 경고한 바와 같이 발로 물을 흐려놓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있어 공포를 최고의 동기로 만든 이들은 세부 사항들로 스스로 분주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과시적인 신앙심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찬양을 좋아했다. 남은 자들을 제외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온 마음과 영혼과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며 이웃을 섬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잃어버렸다. 바울 사도는 이후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 10:2)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아들 예슈아의 인격을 통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 그분이 누구인지 전혀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더이상 익숙히 알지 못했다. 인간의 계명들로 인해 너무나 길을 잃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예슈아의 예루살렘 개선 입성 (Getty)

이스라엘의 본으로부터 우리는 혼란과 전쟁의 때가 사람들에게 영적 축복을 가져다주는 경향이 없음을 본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깊은 악을 드러내는 경우가 잦다. 민족의 민간 평화와 자유를 유지해주는 것은 능동적 기도와 중보이며, 이러한 평화 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은 융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1~4).

감사하게도 예슈아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고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할 사명을 취한 사람들은 소수가 아니었다. 세상은 주님을 따르고 복음에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진정 감사해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어두워도 우리에겐 여호와께서 메시아 예슈아를 통해 유대 민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신약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1:26)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당신의 영을 부으사 모두 구원 받을 기회를 주실 것이다. 메시아께서 재림하시면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이 다시 한번 새 삶을 주실 것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 2:3)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합 2:14)

To be continued next month: The Word of God among the Gent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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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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